벌레 이야기와 밀양, 전도연




<벌레 이야기>를 읽은 것은 지난 주, 햇볕만은 여름같던 오월이었다. 오랫만에 대낮의 카페가 고팠고 읽고 싶던 책도 사든 참. 조용한 골목길, 햇빛을 적당히 가리는 테라스, 찐한 커피, 그리고 카페에서 서비스라며 잘라 준 과일 몇 조각. 들떠서 기분내기엔 더없이 좋은 오후였다. 그 때 펼쳐든 책이 <벌레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책은 얇고 짧았다. 삽십 분, 한 시간, 글쎄, 한 권을 다 읽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모르겠다. 단숨에 읽지는 못했다. 한 장 넘길 수록 주변엔 그늘이 졌고 뒤로 갈수록 시간이 더디 흘렀다. 새로 출간되면서 입혀진 최규석의 그림은 이청준의 글을 더 무겁고 깊게 했다. 바람은 산들산들, 햇빛은 쨍쨍, 새들까지 끼룩끼룩 우는 이 좋은 날에 내 자리 주변으로만 그림자가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수첩에 이런 그림까지 그렸다.



플롯이나 구체적 설정을 비교한다면 영화 <밀양>이 소설 <벌레 이야기>에서 빌려 온 것은 많지 않다. 주인공의 사연과 주변 인물의 묘사, 그리고 밀양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영화가 온전히 창작한 것이다. 아이잃은 어미의 고통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절망 끝에 택하는 결말은 다르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은 일단 같은 질문을 던진다. 신이 인간을, 혹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삶이란 내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타인의 악의로, 우연한 사고로, 때론 운명의 장난으로 산산히 깨지기 쉽고, 일단 깨지고 나면 도저히 붙지 않아 전능한 무엇 없이는 회복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벌레 이야기>가 첫 출간됐던 1980년대 중반, 온 사회가 상처로 신음하던 그 때엔 더욱 해답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설 쪽의 결말이 못 견디게 비관적인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같은 질문을 던졌으되 영화는 다른 길을 택한다. 물론 <밀양>은 <벌레 이야기>와 거의 유사한 수준까지 인물을 떨어뜨리고 신음하게 하지만 결국 땅에서 답을 찾음으로써 이 지긋지긋한 생을 더 지켜보게 한다. 실은 결말이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에 걸쳐 영화는, 촌스럽고 속물적이지만 그럭저럭 웃기기도 하는 우리들 삶을 징글징글 경험하게 한다. <밀양>의 기독교 묘사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불편함은 대부분 묘사가 지극히 사실적이라는 데서 온다. <밀양>은 종교가, 특히 한국 사회의 개신교가 보여 온 여러 특이점을 싱싱하게 펼쳐 놓아 신과 구원이라는 추상적인 질문을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고, 결국은 속세에서 결말을 찾음으로써 소설과 다른 답을 내놓는다. 글쎄, 그것을 신성모독이라고 한다면, 신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 본성을 부흥회와 기복신앙과 배타성 안에 가둔 이들이 먼저 신성모독을 범한 게 아닐런지.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몸부림치고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밀양>은 진정으로 종교적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컷이 바뀌고 씬이 끝날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밀양>이 문학적이라는 평도 꽤 있지만, 모든 장면을 지극히 일상처럼 보이게끔 가장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카메라와 숨죽인 편집을 생각하면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이전의 이창동 영화와 같은 불쾌감은 없었다. <초록물고기>는 약간, <박하사탕>와 <오아시스>는 도저히, 윤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고 온 몸이 피곤할 만큼 불쾌했지만 <밀양>의 피곤함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정성일이 <오아시스>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수준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역겨움은 <밀양>에 없었다. 신 앞에서, 죽음 앞에서, 성별과 정치란 부질없는 것이 되는 걸까. 내가 달라졌든지, 그가 달라졌든지, 혹은 다만 이 영화 탓인지, 그 이유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부터 뉴스는 온통 <밀양>과 전도연의 수상 소식으로 도배다. 나는 전도연의 연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영화 밖에서는 콧소리를 떼지 않을지언정 영화 안에서는 한 번도 예쁜 척 분칠하고 고개세운 적 없는 이 배우를 좋아하지만, <밀양>이 전도연의 영화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전도연이 아니었더라도 이창동 감독은 누군가를 찾아냈을 것이고, 전도연의 신애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신애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벌레 이야기>라는 걸출한 원작을 토대로 했지만 결국 다른 길을 찾아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을 <밀양>을 통해 오랫만에 실감한다. 아직도 나는 이 영화를 기꺼이 좋아하지 못하지만 이같은 영화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오랫만에 바래 본다.






by 하품 | 2007/05/28 18:28 | 눈뜨다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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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삐리고우 at 2007/05/29 13:37
그림 오랜만이네...
Commented by 하품 at 2007/05/31 15:58
심심해서. 흐.
Commented by 카스미 at 2007/06/06 20:4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페이지에 추천글로 올려 놓았습니다.
Commented by BelleGrace at 2007/06/24 22:50
그림이 넘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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