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의 완벽한 카페


당연히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참으로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커피마시고 수다떨기에 바빴던가 보다. 도노(정식명칭 PS1. Dono. 이름의 유래는 묻지 마시라, 잊었다)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카페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커피에 일단 정성을 쏟고, 커피 외의 음료에도 공을 많이 들이는데다(이를테면 과일 주스에는 물을 한 방울도 섞지 않는다든지), 와인도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것들을 모아놓을 줄 알고, 샌드위치를 훌륭하게 만든다. 1층에는 테이블 셋, 2층에는 다섯(창가까지 치면 여섯인가?), 좁아서 더 아늑하고 창이 넓어 시야가 트인다. 대화에 해되지 않는 가벼운 재즈로 음악도 일관성을 지킨다. 아주 가끔을 제외하면 손님도 많지 않다. 의자가 예쁘고, 찻잔도 예쁘다. 예쁜 것, 좋은 것을 분간할 줄 아는 취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집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자격이 없다. 처음 도노의 문을 연 이들은 삼청동 Bar OIOI에서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 자리를 옮겨 자기 가게를 열었다는 걸 알고부터 종종 들렀는데, 늘 손님이 없던지라 죽치고 앉아 많이도 놀았다. 첫눈에는 Bar OIOI과 비슷했지만, 사람들이 더 편안하고 허물없어 더 많이 들락거렸다. 새로 블렌딩한 커피의 실험대상이 될 때도 있었지만, 새 종류의 와인을 들여왔을 때라든가 새로 시작한 메뉴를 실험할 땐 기꺼이, 신나게 몰모트가 되었다. 가끔은 염치없이 얻어먹기도 하고 가끔은 서비스라며 계산에서 빼는 걸 억지로 쥐어주기도 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이곳의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이다. 그들 중 몇은 서로 눈에 익을 만큼 다들 한번 오면 자주 찾는다.

몇 달째 가지 않았다. 어울릴 만한 음악을 챙겨주겠다 약속했는데 그것도 몇 달째 지키지 못했다. 마지막이 언젠지 기억은 안 나지만 겨울 코트를 입었던 날인 것 같다. 음식과 와인을 도와주던 이가 그만두고 다른 사람이 왔다는 얘길 들었다. 덤벙거리는 주인장을 생각하면 좀 불안하지만, 커피만은 그의 몫이니 여전할 것이다. 조만간 찾아가 보려 한다. 그럴 만하니까 그랬으려니 하며 반가이 맞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가게 앞 나무가 한창 예쁠 것이다. 예전엔 늦은 밤에 많이 갔지만 이런 철이라면 한낮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거만한 이들은 2시부터 5시까지는 쉬는 시간. 위치도 참 쌩뚱맞아서 오다가다 들리기는 쉽지가 않다. 대신 새벽 1시까지 열고 뜨내기가 없어 저만의 분위기가 있다. 남산 힐튼 호텔에서 남대문 쪽으로 내려가는 방향, 횡단보도 오른쪽에 노란 간판이 보인다.


ps. 저 그림은 리얼리티와는 무관하게 내게 남아있는 인상의 조합이다. 더불어 지금이 몽롱한 새벽이라는 사실도 감안해 주길.

by 하품 | 2005/05/13 04:03 | 이러고 논다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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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기린그림 at 2005/05/14 00:28
그러게. 거긴 가면 아는 사람 만나는 확률이 매우 높더라만. ^^ 언제 너 한 번 마주치게 되지는 않네.
Commented by 삐리고우 at 2005/05/14 07:37
토욜은 2-5pm pause 없음^^
Commented by 하품 at 2005/05/14 23:42
아 바뀌었구나. 조만간 거기서들 봐요.
Commented by 삐리고우 at 2005/05/16 19:13
마눌님한테 허락받고요.
Commented by 하품 at 2005/05/17 00:29
어머. 버럭.
Commented by 하품 at 2005/05/19 21:36
메일 드렸습니다. 메일 주소가 노출돼 있어서 덧글은 일단 삭제했습니다.
Commented by 뭉뭉이 at 2009/10/05 22:25
와.... 이 덧글 올리기 짱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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